아이 수면 루틴, 우리가 망한 날들 - “루틴도 인간이 하는 거잖아요…”
😵 매일 밤, 완벽한 루틴은 없었습니다
아이의 수면 루틴을 잡겠다고 결심했던 날, 우리는 다짐했었습니다.
"매일 밤 9시 30분엔 조명 끄고, 음악 틀고, 책 읽고, 잠자리에 들자."
그 루틴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가족 전체의 수면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었지요.
처음 며칠은 잘 지켜졌습니다. 아이도 반응이 좋았고, 우리도 ‘드디어 육아에 진입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루틴’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자신이 조금 순진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현실의 밤은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그날마다, 루틴은 조각났고, 우리는 무너졌습니다.
🧸 실패한 밤 1: 할머니 댁 다녀오던 날
그날은 남편이 야근을 했고, 나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 댁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이미 밤 9시. 차 안에서 아이는 눈을 비비며 졸려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들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씻겨야 했고, 기저귀도 갈아야 했고, 책도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오늘은 그냥 자자"고 했고,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잠든 건 밤 11시 10분.
루틴은 커녕, 엄마와 아이 모두 감정 소모만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 실패한 밤 2: 내가 핸드폰에 잠식당했던 날
분명히 루틴대로 진행되던 밤이었습니다. 책도 읽고, ASMR도 틀어주고, 조명도 어둡게 하고, 아이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잠드는 동안, 나는 아이 옆에 누워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딱 10분만 인스타 보고, 커뮤니티 댓글 몇 개만 읽고 자야지’ 했는데…
어느새 불빛에 아이가 다시 눈을 떴습니다. “엄마 뭐 봐?”라는 말에 나는 움찔했죠.
그날,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루틴을 반복해야 했고,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던 그 조그만 기계가 아이의 밤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 실패한 밤 3: 부부 싸움, 그리고 무너진 밤
우리 부부는 아이 앞에서는 되도록 감정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육아와 일상 속 스트레스가 너무 커져서, 결국 아이가 보는 앞에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아이도 기운을 느낀 듯 책을 고르지 않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엄마, 오늘 왜 그래?"라고 물었습니다.
그날 아이는 1시간 넘게 눈을 감지 않았고, 나와 남편도 각자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밤을 버텼습니다.
루틴은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 아니라, 감정의 안정 위에 쌓이는 것이라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 실패한 밤 4: 그저 너무 피곤했던 날
일도 많았고, 아이도 낮잠을 제대로 못 잤던 날이었습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순간부터 졸음이 밀려왔고, 아이가 "책은?"이라고 물었을 때 눈을 뜨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ASMR만 틀어준 채 그대로 아이 옆에서 같이 잠들었습니다. 책도, 조명도, 대화도 없이...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엄마 어제 이야기 안 해줘서 이상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일 같았지만, 루틴이라는 게 단순히 ‘순서’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아이와 연결된 신호 체계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루틴이 무너졌던 그 밤들, 꼭 실패였을까요?
이런 날들이 반복되면 부모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오늘도 또 실패했네’ 하며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도 부모도 사람이고, 루틴은 기계적인 패턴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리듬’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어떤 날은 책 한 권 없이도 따뜻한 손길 하나로 잠들 수 있고, 어떤 날은 루틴을 다 지켰는데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는 법입니다.
🌙 우리가 다시 시작한 건 '다음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루틴이 무너진 날들 덕분에 무조건적인 완벽함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조명을 낮추고, 음악을 켜고,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을지도 몰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루틴은 지키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리듬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아이와 함께, 하루하루 현실 속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