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모님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나갔다. 평범한 식사 자리였지만, 나에겐 하나의 작은 실험이었다.
얼마 전 부모님은 ‘디지털 배움터’에서 키오스크 교육을 받으셨고, 그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젠 키오스크도 좀 만질 줄 알겠어. 다음에 너 없이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아무런 도움 없이,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직접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보기로 했다.
👀 키오스크 앞에 서기까지 – “이거 우리가 했던 거 맞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가 먼저 눈을 돌리셨다. 자동문 바로 옆, 한쪽 벽면에 키오스크가 있었다.
화면은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터치하여 시작하세요’라는 문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올려 터치했다.
그 순간, 교육에서 익혔던 자신감은 사라지고 낯섦만 남았다.
우리가 교육받았던 키오스크 샘플 모형은 메뉴 구성도 단순했고, 화면 흐름도 천천히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매장의 키오스크는 활동적인 UI, 빨리 움직이는 광고 배너, 복잡한 메뉴 구성으로 부모님께 처음부터 부담을 줬다.
아버지는 조용히 뒤로 한 발 물러섰고, 어머니는 “이거 우리가 했던 거랑은 좀 다르네”라며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 메뉴를 고르는 데도, 화면이 빨리 지나간다
햄버거를 고르기 위해 카테고리를 선택하는데, 카테고리 메뉴가 자꾸 스크롤되어 아래로 밀려갔다.
어머니는 다시 위로 올리는 제스처를 하셨지만, 손가락이 두꺼우셔서 스크롤바를 정확히 누르지 못하셨다.
화면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대신 튕기듯 반응했고, 그 사이 어머니는 버튼을 두세 번 잘못 누르셨다.
버튼이 눌렸는지 안눌렸는지도 애매했고, 특히 터치 반응음이 없어서 어머니께서는 눌렀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셨다.
👩 어머니의 말
“이거, 내가 누른 거 맞아?
왜 안 넘어가? 다시 눌러볼까?”
이 장면에서 나는 명확히 느꼈다.
시각적 피드백과 청각적 피드백 모두 부족하면, 기계는 신뢰를 주지 못한다.
⏱ 타이머 스트레스 – 속도에 쫓기는 주문
어머니가 고른 버거를 장바구니에 담는 데 성공했을 무렵, 화면 상단에 빨간 숫자가 카운트 되고 있었다.
‘30초 내 조작이 없을 시 초기화됩니다’라는 문구였다.
어머니는 순간 당황하셨다.
어디서 결제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모른 채 화면을 계속 이리저리 스크롤 했다.
“빨리 해야 되는 거야?
어디 누르는 거야 이젠 또…”
그 순간 나는 직관적이지 않은 화면 배치가 어르신들에겐 얼마나 큰 압박이 되는지 실감했다.
타이머는 ‘효율’을 위한 것이겠지만, **사용자 경험(UX) 입장에서는 ‘실패 유도 장치’**에 가까웠다.
특히 처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시간보다 명확한 안내가 훨씬 중요하다.
💳 결제 단계 – 카드 넣는 곳은 왜 그렇게 숨어 있을까?
드디어 ‘결제하기’ 버튼을 찾아 누른 뒤, 어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단말기 앞쪽에 대셨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카드를 댄 위치는 실제 카드 리더기가 아니었고, 카드 삽입 구멍은 화면 하단 오른쪽에 숨어 있었다.
그 위치도 작고, 별다른 안내도 없어서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여기다 대는 게 아니었어? 그럼… 어디다 넣는 거야?”
화면 한쪽에 작은 텍스트로 ‘카드를 아래 슬롯에 삽입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문구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익숙한 사용자뿐이었다.
우리는 결국 카드 삽입에 실패했고, 결제 단계에서 화면이 초기화되었다.
🧍 직원의 개입 – 디지털 격차의 현실을 되짚다
우리가 다시 처음부터 주문하려고 하자, 매장 직원이 다가와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직원은 빠르게 터치 몇 번으로 주문을 마무리했고, 그걸 본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처음부터 해달라고 할 걸 그랬다.”
나는 그 웃음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가를 실감했다.
어머니는 틀리지 않았다. 기계는, 이 사회는, 처음부터 어머니를 환영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도록 된 설계는 결국 반복을 차단한다.
🧠 교육과 실전 사이의 간극, UX는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우리는 키오스크 교육에서 버튼 누르기, 메뉴 고르기, 결제 흐름까지 모든 걸 연습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이상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실전에서는 시간 압박, 시선 의식, 메뉴 복잡도 등 교육에선 다루지 못한 요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날의 경험을 통해 고령자를 위한 UX 설계는 단순한 기능 제공이 아니라
**실수의 여지를 줄이는 ‘실전 중심 설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 마무리 – 기술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쓰는 것이다
햄버거를 받고 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말없이 감자튀김을 드셨다.
조심스럽게 “그래도 다음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이 어려웠던 거지, 다음엔 아마 더 쉬울 거야.”
그날 이후 나는 '기술'이란 **속도와 기능이 아닌 ‘기회와 반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실패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실패를 무섭게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디지털 포용이란 결국 누군가의 옆에 서서, 그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어머니의 첫 실패는 작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우리가 보완해서 만든다면 두 번째는 성공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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